6
사람들은 말한다.
세계에는 신이 있고 악마가 있다. 그것은 진실하다.
교단 사람들은 두달에 한두번씩 마을에 찾아와 신과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신은 세상을 보살피는 자애로운 존재.
악마는 신에게 대적하는 불길하고 자.
마녀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더러운 자들.
신은 마녀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안식을 빼앗고 영원한 고통을 약속했다. 그들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영원한 고통에서 설아가야 하리라.
"마녀에게 육체적인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어."
담배를 문 수녀 복장의 여성이 단조롭게 말했다.
"그들에게 육체적인 죽음은 진정한 끝이 아니야. 새로 시작하는 삶의 분기점일 뿐이지."
"분기점이에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날 것인가, 전생의 기억이 없이 태어날 것인가."
여성은 쓴웃음을 지었다.
"마녀는 죽어도 다시 태어나. 신이 그들에게 안식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1년 전,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때마침 찾아온 교단 사람들이 마녀 토벌을 말함으로서 그 소문이 사실임을 알렸다.
오르트 스칼은 그런 교단 사람 중 하나로서 마을에 찾아온 새로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홀로 있는 일이 많은 르네에게 종종 말을 걸어왔다.
"마녀란 악마의 파편을 가진 자들이야. 악마의 영혼의 일부지. 그것을 지닌 자는 악마의 힘을 쓸 수 있지만, 악마의 죽음으로 마녀에게도 세대가 나눠어졌어."
하루는 르네의 부탁으로 마녀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녀는 수녀답게 여러 가지를 알았다.
"하나는 악마와 직접 계약해 파편을 얻은 자, 악마가 살아있을 무렵에 탄생한 마녀. 또 하나는 계약없이 파편을 얻은 자. 악마가 죽은 후에 탄생한 마녀들이지."
오르트는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고 연기를 뿜어냈다. 새하얀 연기가 하늘 위로 올라간다. 르네는 곁에서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했다.
"악마의 파편을 가졌다는 건 악마의 힘을 쓸 수 있다는 소리야. 신은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어. 안식을 빼앗고 영원한 고통을 약속했지. 아는 마녀의 말론 수백 년간 매일 고문받는 기분이라더군. 하지만 정작 힘은 뺏지 않았고, 덕분에 세상에는 힘 있는 미친년들이 잔뜩 탄생하게 되었지."
오르트는 옆에 르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니까 넌 마녀가 아니야. 정신병자가 아니잖냐. 그리고 힘도 없지. 마녀였음 이 마을 사람들 다 죽었을걸?"
오르트는 입꼬리를 올리며 르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르네는 고개를 숙였다.
"왜? 마녀가 되고 싶어?"
"마녀라 불릴 거라면 진짜 마녀인 게 좋아요……."
"복수도 할 수 있을 테고?"
"그건……."
르네는 잠시 고민하다 오르트의 팔에 이마를 비볐다.
"수녀님이 화낼 테니 안 할래요."
그 말에 오르트는 잠시 입을 다물다, 제자 한 명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착하구나. 피오나는 그러든 말든 전부 다 죽여버리겠다고 했는데, 넌 걔보단 날 닮았네."
수녀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담배 하나가 전부 타오를 정도의 시간이 지난다. 수녀는 품에서 새로운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성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밖에서 뭐 하고 싶은 게 있니?"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르네는 눈을 깜박였다.
"하고 싶은 거요?"
"꿈이나 그런 거. 하긴 이런 작은 마을에만 있었으니 다른 직업 같은 거 모르려나."
불필요한 것을 물었다며 오르트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르네가 수녀의 팔을 움켜잡았다.
"아뇨, 저….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있어?"
"책에서 봤어요. 요리사라는 거요. 아니면 음유시인이라든가."
르네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잠시 우물쭈물했지만 오르트는 침착하게 기다려주었다. 이윽고 르네의 입이 겨우 열렸다.
"할머니가……."
르네는 침을 삼킨 후,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가 보시던 책이 있었어요. 모험소설이요. 저한테도 읽어주신 적이 있어요. 거기서 왕실 요리사나 음유시인 같은 게 나왔어요. 전 요리를 잘하는 편이거든요. 할머니가 맛있다고 해주셨고, 그리고 노래도 잘 불러요. 할머니가 듣기 좋다고 해주셨고……."
말하는 게 어쩐지 부끄러웠다. 이런 말은 할머니에게도 하지 않았다. 르네는 양손을 마주 마주 잡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하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에서 나가면 요리사나 음유시인 같은 게 되고 싶어요. 꿈이에요."
오르트는 입을 담배를 입에 물고 가만히 르네를 내려다보았다. 약간 놀랐다. 적극적인 거랑은 거리가 있는 아이라 생각했다. 오르트는 작게 웃었다.
"그래…. 그 점은 나랑 다르네."
그녀는 연기를 한껏 들이켠 뒤,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지져 껐다. 그리고 르네의 양어깨를 붙잡고 조용히 말했다.
"날 따라올래?"
갑작스러운 말에 르네는 눈을 깜박였다. 시야 정면에 오르트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진지했다.
"수녀나 신부가 되기 위한 공부는 해야 할 거야. 제자를 더 늘릴 생각은 없었지만, 뭐 괜찮겠지. 피오나 녀석도 기뻐할 테고 학교 추천서 하나 정도는 써줄 거야. 네가 원한다는 요리사도 될 수 있어. 음유시인은 고대적 직업이라 없지만, 비슷한 직종이 있고."
"...절…. 데려가 주신다는 거예요?"
"그래. 네가 원한다……."
"갈래요! 데려가 주세요!"
르네는 말을 끝나기도 전에 오르트의 팔을 붙잡고 외쳤다. 그 격한 반응을 본 수녀는 잠시 놀랐 하지만 이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단 사람들 앞에서는 이 작은 소녀를 무시할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선 분명 괴롭힘이 있었겠지. 하지만 교단 사람은 관리자일 뿐, 지원 봉사자는 아니다. 괴롭힘을 당한다고 특별히 신경 쓰진 않는다. 죽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나 때도 그랬다.
오르트는 씁쓸하게 웃으며 자신을 붙들고 놓을 생각을 안 하는 소녀의 뺨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리게 했다. 눈물이 맺혀있었다. 소녀의 코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말해두지만 쉽진 않을 거다. 글은 읽을 줄 아는 것 같다만 다른 기초적인 게 없어서 공부하는 게 쉽진 않을걸. 공부 지옥을 우습게 보면 안 돼."
"괜찮아요, 열심히 할게요."
르네는 눈물이 왈칵 나오는 것을 느끼고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오르트는 말없이 그것을 보다 르네를 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정말이지 넌 묘하게 나랑 닮았어. 그 때문에 너한테 계속 눈이 간단 말이지."
"...그래서 잘해주시는 거예요?"
말을 먼저 걸어온 것은 오르트였다. 르네는 그녀를 잠시 경계했지만 곧 풀었다. 오르트는 그걸 쉬운 아이라고 표현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넌 좀 걱정이 되거든. 잘해주는 사람한테 지나치게 약한 점이 말이야."
그녀는 르네의 뺨을 잡아 문지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정말이지, 소동물처럼 경계심 좀 있나 했더니, 사탕 하나 줄까? 이 한마디에 바로 고맙습니다……. 하며 따라오는 거 보고 아, 이 녀석 변질자가 사탕 줘도 막 좋다고 따라가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덕분에 걱정돼서 말 좀 걸어봤지."
"뭐에요…. 저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말은. 사탕 하나에 꼬리 살랑살랑 흔들던 애가 그런 말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으…. 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예요?"
"글쎄다. 평생?"
오르트는 르네의 뺨을 더욱 거칠게 비비며 킬킬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넌 나랑 닮은 점이 있어. 그러니 이상한 사람한테 홀리지 않도록 주의해라. 잘해주는 놈 중에는 미친 놈도 분명 있거든."
그렇게 말하는 오르트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약속은 그 어느 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7
갑자기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수녀님이 했던 말 때문일까. 이상한 사람한테 홀리지 말라는 그 말. 어쩌면 마녀가 상냥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녀님이 죽고 자신에게 상냥한 사람은 다시 한 명도 없게 되었으니까.
"헉…. 헉……."
르네는 터질 것 같은 가슴을 가라앉히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 달렸다. 어느새 산 중턱까지 들어와 있었다. 우거진 나무와 풀들로 온몸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 달라붙는 상처들과 비교하면 사소한 것이다. 하지만 차분하게 쉴 수 없었다.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생각보다 멀리까지 도망가는구나."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 르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떨었다.
마녀가 있었다.
"마녀인 내게서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니."
화사한 금발. 부드러운 미소. 단정한 드레스에는 르네와 달리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다. 그녀는 물었다.
"마녀를 싫어하니?"
르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며 어떻게든 도망칠 길을 찾았다. 마녀는 소녀의 생각을 알고 상냥하게 웃었다.
"말했잖니? 도망치지 못한다고. 마녀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단다."
그녀가 손을 한번 휘두르자 주변이 흔들렸다. 르네는 무릎을 꿇고 땅에 엎어졌다. 몸이 무거운 것에 눌린 감각이었다. 몸은커녕 고개도 들기 힘들었다.
"왜 도망치는 거니? 나는 마녀지만 상냥한 마녀란다."
"안 믿…. 어요."
르네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들었다. 마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마녀는 전부 미쳤다고 들었어요."
"누구한테?"
"교단 사람한테서요."
마녀는 난처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교단 것들은 마녀를 무조건 나쁘다고 말한단다. 걸러 들을 건 걸러서 듣는 게 좋아."
"...저에게 말해주신 분은 걸러 들을 말은 하지 않았어요."
르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마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녀가 수녀님을 죽였어요."
오르트는 1년 전 죽었다. 르네에게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정확히는 실종이지만 다들 사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르네가 그 말을 내뱉자 몸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르네는 영문을 모르지만,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현기증에 몸이 흔들렸다. 마녀가 어깨를 잡아 지탱해주었다. 눈이 마주쳤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 마녀가 싫어진 거니?"
르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마주친 눈을 피했다. 마녀는 부드러운 한숨을 흘렸다.
"나는 지금까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단다.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네게 미움 받는 건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구나."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냥하게 이마에 입을 맞췄다. 눈물이 맺힌 눈을 입술로 문질렀다. 르네는 그녀를 밀어냈다.
"왜…. 저한테 상냥하게 대해주시는 건데요?"
"아는 사람이 떠오르거든. 그 사람도 불쌍한 인간이었지. 그래서 잘해주고 싶었어."
"왜요? 당신은 마녀잖아요."
"마녀라고 다 미쳐있진 않는단다. 마녀인 내가 장담할게."
그녀는 한쪽 눈을 깜박였다. 르네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마녀는 어깨를 놓았다.
"나는 그저 너와 좀 더 친해지고 싶을 뿐이란다."
상냥하고 아름다운 미소. 저렇게까지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어여쁜 사람. 마치 꿈만 같다. 하지만 마녀.
르네는 오르트 수녀를 떠올렸다. 거칠지만 상냥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떠올린다. 교회 사람들에게 들었던 마녀들의 미친 짓거리를 떠올렸다.
"...못 믿어요."
르네는 마녀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뛰었다. 다행히 쫓아오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등 뒤로 꽂히는 시선을 계속 느끼고 있다. 르네는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