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미래의 지구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미래 지구문명 이야기를 다룬 SF들 중에서 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을만한 걸작이다. 자연과 인간의 환경 생태적 연관성을 장대한 드라마로 엮어 내면서 우리 인류문명이 미래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묵직한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현재의 문명이 멸망해버린 먼 미래의 지구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전면 핵전쟁으로 추측되는 대재앙이 지나간 뒤 인류는 다시 새로운 문명을 건설했지만, 세상은 온통 유독가스를 내뿜는 돌연변이 식물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그 틈에서 얼마 안 되는 맑은 공기에 의지하며 이곳저곳 작은 왕국을 이루어 살고 있다.
나우시카는 ‘바람계곡’이라는 작은 왕국의 공주이다. 바닷가에 면한 바람계곡은 해풍 덕분에 유독가스의 힘이 미치지 못해 사람들의 생존이 가능하다.
어느 날 외국의 비행선이 추락하면서 시작된 여러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생태 환경의 뿌리를 뒤흔드는 엄청난 위기로 확대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강경한 물리적 해결방법을 내세우지만 나우시카만은 끝까지 자연과 생명을 지키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원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7권짜리 장편 만화이다. 영화화 된 것은 그 중에서 1,2권에 지나지 않으며, 원작 만화는 영화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많이 담고 있다. (원작만화도 국내에 모두 번역되어 나와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맺어지지만, 원작의 결말은 그렇게 단순한 구성이 아니다. 인류의 미래는 우리들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만 냉정하게 언급할 뿐이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된 내용은 크게 보면 지구라는 한 생태계의 균형과 자체 정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특히 ‘부해’라는 유독가스 지역이 널리 퍼져 있어서 이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가 없는데, 사실은 이런 곳들이 오염된 지구를 깨끗하게 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 수가 있다. 지구가 독가스 지역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깨끗한 상태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결국엔 지구 전체가 썩어서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독가스를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역할은 과연 누가 맡는 것일까?
사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더러운 공기를 깨끗하게 바꿔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있다. 바로 나무나 풀 같은 식물들이다. 우리 인간은 숨을 쉴 때 산소를 들이마시며, 내 쉴 때에는 우리 몸에서 불필요한 성분들을 밖으로 배출한다. 그런데 이때 이산화탄소도 함께 내보낸다. 바로 이런 이산화탄소가 식물들에게는 숨 쉴 때 필요한 물질이 된다. 즉 동물과 식물은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식물은 이산화탄소 외에 다른 여러 가지 공해 오염 물질들도 함께 빨아들인 다음 자기 몸속에서 해롭지 않은 다른 성분으로 바꾸어버린다. 즉 식물은 지구 생태계를 깨끗하게 유지해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는 돌연변이 식물들이 공기를 정화시키는 대신 독가스를 내뿜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나우시카의 활약 덕분에 사실은 그것도 크게 보면 정화 작용의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즉 식물들은 지구상의 공기와 땅에 가득한 오염 물질들을 빨아들인 다음 지하 깊숙한 곳에서 스스로 딱딱한 돌 같은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과 같은 맑은 공기가 지하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 올라오고 있었고 돌연변이 식물들도 점점 사라지는 중이었다.
우리가 식물을 보호하고 자연 녹지가 줄어들지 않도록 애쓰는 이유는 바로 지구 환경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이제까지는 자동차나 발전소 등에서 나오는 유독 가스들이 나무나 풀 같은 식물들에 의해 정화되어 왔지만, 점점 가스배출량은 많아지고 식물들이 사는 공간은 좁아져서 공기가 나빠지고 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기 속의 여러 가지 나쁜 물질들 때문에 호흡기 질환이나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질병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를 많이 심고 잘 자라도록 계속 돌보아주면 식물들도 우리에게 큰 보답을 한다. 식물들이 주는 깨끗하고 맑은 공기는 돈을 많이 들인다고 해서 금방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구 전체는 자체적으로 오염과 정화가 균형을 이루어 안정적으로 순환되는 하나의 거대한 독립 생태계이다. 이 안에서 온갖 생물들과 대기, 바위와 흙, 바다와 빙하 등이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자체적인 물질대사의 순환과 정화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아주 작은 ‘미니 지구’를 만들어서 지구 생태계가 어떻게 잘 생존해 나가는지 알아 볼 수 있다.
먼저 작은 유리공 안의 2/3 정도를 바닷물과 약간의 자갈, 모래로 적당히 채워 넣고, 거기다 아주 조그마한 빨간 새우 몇 마리를 떨어뜨린다. 그리고 녹색 바닷말도 넣는다. 그 다음 유리공의 구멍을 녹여서 밀봉하는 것이다.
이 미니 지구는 원래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인간이 우주로 진출할 때를 예상해서 우주식민지의 가상 실험용으로 고안했던 것이다. 외계 행성에는 지구처럼 산소도 없고 식물도 없기 때문에 우주식민지 안에서만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사람들이 계속 숨을 쉬어서 산소는 점점 줄어드는 대신 이산화탄소만 늘어날 것이다. 또 대소변 등 인간이 배출하는 여러 가지 배설물이나 각종 쓰레기 등도 계속 쌓여만 갈 것이다. 과연 이런 문제들은 어떻게 처리할까?
바로 식물을 함께 키우는 게 정답이다.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식물들이 빨아들여서 산소로 바꾸어 주며, 배설물 또한 식물들의 거름이 되어 없어진다. 이렇게 우주식민지는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모든 물질이 공급되고 정화되는 순환 시스템인 것이다.
유리공 안에 만든 미니 지구도 완전히 밀봉되어 있기 때문에 새우들에게 먹이를 줄 수도 없고, 물이 더러워져도 갈아 줄 수도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 안에서 다 해결된다. 새우와 바닷말들은 서로 필요한 물질을 교환하면서 자급자족해서 잘 살아간다. 다만 우리가 신경 써 주어야 할 것은 밤과 낮을 잘 맞춰 주는 것이다. 미니 지구가 외부에서 공급받는 단 한 가지가 바로 햇빛이기 때문이다. 식물들은 빛이 있어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서 영양분을 만들어내는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다. 만약 밤낮이 없이 계속 빛을 쬐어 주면 식물들이 지나치게 잘 자라서 결국은 미니 지구가 다 썩어버리게 된다.
이 유리공은 지구의 축소판이다. 자갈과 모래, 그리고 유리공 그 자체는 땅에 해당된다. 물은 바다이고, 공기는 대기권이며, 새우와 바닷말, 그리고 눈에는 안 보이지만 미생물들은 지구의 생물들에 해당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햇빛은 지구나 유리공이나 똑같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지구 생태계가 오염된 원인은 바로 우리 인간들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인류 문명과 지구의 미래야말로 바로 우리들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