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숨은SF영화 다이어리

<제 4 의 종말>
원제 Phase IV / 1974년 미국 / 국내출시 1990년 / 출시사 CIC
감독 솔 배스 / 주연 마이클 머피 외
이 비디오의 자켓 그림은 싸구려 공포영화라고 지레 짐작하기 딱 좋지만, 사실은 보기드물게 진지한 SF적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다.
어떤 천문학적 이변의 여파로 개미들이 놀라운 초지성을 갖게 된다. 그들은 같은 종족끼리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신속하게 자기들의 천적 생물들을 제거해 가며 세력을 확대해나간다. 이러한 개미들의 변이는 곧 과학자들에게 포착되어, 암호해독 전문가를 포함한 연구팀이 외딴 오지에 연구기지를 세우고 개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이 영화는 우선 개미들을 찍은 특수촬영이 놀랍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니라, 영화 내용에 맞게 개미들이 연기를 하도록 연출해낸 점이 돋보인다. 게다가 등장인물은 전부 다섯 명에 지나지 않고 촬영 장소도 사막 위에 지은 연구소 안팎과 그 주변 뿐이다. 실로 저예산 SF 영화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갖는 주제의식은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을만큼 묵직한 깊이가 있다. 인간의 아집과 편협함 따위가 한 꺼풀씩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모습, 그리고 개미들이 무심한 듯 그에 차근차근 대응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자연과 우주 속에서 인간의 위상을 담담하게 객관적으로 조망하게 된다.
감독인 솔 배스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히치코크의 <사이코>나 스탠리 큐브릭의 <스팔타커스>등 몇몇 걸작 영화들의 명장면 부분을 구성하거나 감독했다. 또한 1968년에는 단편 다큐멘터리로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