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SF명작 다이제스트

<콘택트 Contact>

* 줄거리 

어릴때부터 과학에 깊은 관심과 총명한 재능을 보였던 소녀 애로웨이는 하버드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뒤 훌륭한 전파천문학자로 성장한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가 재혼한 뒤 같이 살게 된 새아버지와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애로웨이는 드럼린 교수의 지도를 받아 외계의 지적인 생명체를 찾는 작업에 매달리게 된다. 그런 존재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를 샅샅이 훑으며 뭔가 메시지가 담긴 전파를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다.

어느 날, 태양계에서 26광년 떨어져 있는 직녀성으로부터 이상한 전파가 포착된다. 그 전파는 일련의 숫자들만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 수열은 다름아닌 소수, 즉 1과 그 자신만으로 나누어지는 수들이었다. 소수 수열을 담은 전파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즉, 이 신호는 외계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전파를 면밀하게 분석하자 그 안에는 음향과 영상 신호도 들어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놀랍게도 화면에는 나치의 십자가 모습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일순 경악하지만, 이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그것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는 TV방송이었다. 그 전파가 지구 바깥으로 퍼져나가 26년 뒤에 직녀성에 도달하자, 다시 직녀성에서는 그 전파를 자신들의 메시지와 함께 되돌려보낸 것이다.

소련,중국,일본 등 다국적 과학자들의 협력 체제가 구축되어 메시지의 본격적인 해석이 시작된다. 한편 전 세계의 일반 대중들은 직녀성의 메시지에 대해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는데, 특히 종교적 관점에서 일종의 계시로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메시지 해독작업이 진행되면서 어떤 기계의 설계도가 담겨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그 용도나 작동원리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계 내부에 다섯 개의 좌석이 설치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이유로 외계인이 지구 정복을 위해 보낸 트로이의 목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무튼 격론끝에 인류는 그 기계의 제작에 착수하는데, 그 작업은 지구 전체의 경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엄청난 자본과 수 년 동안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기계의 제작 도중에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사고로 말미암아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드럼린 등 여러 명이 사망하고 만다. 세계에는 기계의 제작에 반대하는 여론이 여전히 매우 많았다.

마침내 우여곡절끝에 기계가 완성되고 애로웨이는 탑승자로 선발되어 세계 각국에서 온 동료 과학자들과 함께 미지의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처음엔 아래로 낙하하는 느낌을 받다가, 이내 블랙홀을 통과하는 듯한 경험을 한다. 그들은 계속 터널같은 곳을 통과하면서 우주의 여러 별들 모습을 지나치는데, 얼마 뒤엔 처음에 전파를 보냈던 직녀성도 그들 곁을 지나가버린다. 그들이 보기에 기계는 '점프'를 계속하면서 점점 먼 우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파도가 잔잔하게 부서지는 해변가에 도착한다.

그들은 해변가에 둘러앉아 짧은 여행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학문적인 토론도 하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불을 피우고 잠이 든다. 다시 일어난 그들 앞에는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문짝 하나가 모래사장에 홀연히 서 있었다. 그들은 순서를 정해 한 명씩 그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보낸 애로웨이는 해변가에 남아있다가 문득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깨닫는데, 다음순간 그대로 달려가서 그의 품에 안긴다. 그녀가 어릴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였다.

사실 외계인은 애로웨이가 잠을 잘 때 꾼 꿈을 통해 그녀에게 친숙한 존재를 알아낸 뒤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애로웨이는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질문하고, 외계인은 대부분 모호한 내용이지만 성실하게 답변해 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주에는 거대한 문명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인류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문학적 규모의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변가의 문에서 애로웨이의 동료들이 다시 나타난다. 그들 역시 각자 친숙한 사람들과 함께 나와서 서로들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는 애로웨이의 아버지가 이제 작별할 시간임을 말한다.

애로웨이는 동료들과 떠들썩하게 여행의 성공을 자축하며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그러나 기계에서 나온 그들에게는 뜻밖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는 그냥 아래로 떨어져버렸을 뿐이고 시간은 단지 20여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고 돌아 온 애로웨이와 동료 승무원들의 얘기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에서는 이 모든 일을 다국적 기업의 총수와 과학자들이 꾸민 거대한 사기극으로 의심하기까지 한다.

결국 일이 흐지부지된 채 마무리 될 즈음, 양로원에 있던 애로웨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그녀는 딸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겼는데, 그 편지엔 너의 의붓아버지가 사실은 네 친아버지다 라는 내용과 함께 용서를 비는 말이 들어 있었다.

* 작가에 대해

칼 세이건 (Carl Sagan:1934-1996)

칼 세이건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SF작가라기보다는 과학저술가로서 더 유명하다. 1980년에 13부작 TV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코스모스>의 기획과 진행을 맡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며 이 내용은 책으로도 출판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당시 <코스모스>는 우리나라에서도 TV프로그램과 책 모두 대단한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는 대중과학 저술가로 명성을 얻기 전부터 탁월한 천문학자이자 우주과학자로 인정받으며 활동해오고 있었다. 일찌기 코넬 대학의 행성연구소 소장을 맡았고 1971년에 발사된 화성탐사선 마리너 9호 프로젝트에서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바이킹과 보이저 탐사선 계획에서도 핵심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특히 태양계 탐사를 마치고 바깥 우주공간으로 날아 간 파이오니어 10호에 외계인에게 전달하는 지구 인류의 메시지를 넣은 것도 세이건이 책임을 맡아 진행한 일이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활발하게 대중을 위한 과학저술 작업에 몰두했으며, 그 결과 오늘날 미국에서는 과학의 대중화에 사실상 제일 크게 기여한 과학자로 꼽히기에 이르렀다.

칼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에 대해 일찍부터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 온 몇 안 되는 과학자 중 하나였다. 이미 1966년에 소련의 과학자인 슈클로프스키와 공저로 <우주의 지적 생명체>라는 책을 냈고, 그밖에 <코스믹 커넥션(1973)>,<지적인 외계생명체와의 교신(1973)> 등의 책을 쓰거나 편집했다.

한편 생물학, 특히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도 연구하여 <에덴의 공룡(1977)>이란 저술을 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스테디셀러가 된 이 책은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 바 있다.

지속적인 대중과학서 집필과 <코스모스>의 성공 등으로 대중과학자로서 크나큰 명성을 얻은 세이건은 1981년에 자신의 첫 SF소설에 대한 선인세로 2백만달러를 받는다. 책이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985년. 그 작품이 바로 <콘택트>였다.

나름대로 진지하고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콘택트>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자, 세이건은 다시 대중과학서 집필에 몰두하여 아내인 앤 드루얀과 공저로 <혜성(1985)>,<창백한 푸른 점(1994)> 등의 책을 냈다. 원래 영화 시나리오이기도 했던 그의 소설 <콘택트>는 발표 10여년 만에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세이건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96년에 작고하고 말았다.

* 작품에 대해

1997년에 로버트 제멕키스 감독의 영화 <콘택트>가 처음으로 개봉되었다. 구성이나 연기, 그리고 과학적 설정 묘사와 특수효과 등이 훌륭하게 조화된 이 영화는 SF팬이나 과학애호가들 뿐만아니라 일반 대중들로부터 광범위한 호평을 받으며 성공작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바로 칼 세이건이 일찌기 1985년에 발표한 장편 SF소설 <콘택트>이다.

저명한 대중과학 저술가였던 칼 세이건은 자신이 직접 SF소설을 쓰기 전부터 이 분야에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1979년에 낸 대중과학서인 <브로카의 뇌>에는 '과학소설:개인적인 견해'라는 독립된 글이 실려있으며 대표작인 <코스모스>에서도 여러 곳에 SF를 인용하거나 소개하고 있다. 특히 목성이나 토성으로 가는 유인우주탐사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항해일지 형식으로 짤막하게나마 SF를 시도하기도 했다.

<콘택트>는 세이건이 평소에 천착해왔던 지적인 외계생명체의 탐색(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이라는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최대한 현실적인 시나리오를 그려 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중반 부분까지는 좀 지루하게 늘어지는 감이 있지만 후반 이후부터 긴박한 전개가 점점 고조되다가 마침내 주인공 일행이 '기계'를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장면에서 클라이막스를 이룬다. 영화에서 시각적으로도 잘 묘사되었듯이 세이건은 이 우주여행 부분을 결코 진부하거나 천박하게 처리하지 않고 세련되게 묘사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하였다. SF팬들에게는 두고두고 명장면으로 남을 부분이다.

<콘택트>는 과학적 묘사의 정밀성에 중점을 두는 하드(hard)SF로서도 손색이 없다. 외계인의 전파가 우리가 흔히 쓰는 라디오 방송처럼 주파수변조(FM)나 진폭변조(AM)가 아니라 편광변조(PM) 방식이라는 설정도 흥미롭고, '기계'의 작동원리나 우주여행의 시간지연 효과 등에서도 적당한 수준의 과학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