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 트렉> - 미래 신화의 탄생
어떤 TV연속극의 팬들이 수십만 통의 편지를 정부에 보낸 일이 있었다면? 요즘처럼 간편하게 이메일이나 온라인으로 글을 작성하는 얘기가 아니다. 편지지에 손으로 내용을 써서 봉투에 넣은 뒤 우표를 붙여 우체통이나 우체국까지 가서 부쳐야 하는 일이다.
이 일화는 미국에서 최초의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졌을 때 열성적인 <스타 트렉> 팬들이 워싱턴의 미 행정부로 40만 통 가까운 편지를 보낸 일을 말한다. 그 편지들의 내용은 대부분 우주왕복선의 이름을 ‘엔터프라이즈’호라고 붙이도록 미항공우주국(NASA)에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NASA로 직접 날아 간 편지들은 제외된 수치임을 유의하자.) 물론 엔터프라이즈호는 이 SF연속극의 주인공 격인 우주선이며, 결국 최초의 우주왕복선은 원래 예정된 ‘컨스티튜션(Constitution)’이라는 이름 대신 ‘엔터프라이즈’로 명명되었다.
이렇듯 열성적인 <스타 트렉>의 팬들은 이미 고유명사화 된 지 오래이다. 영어사전에도 올라간 ‘트레키(trekkie)’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정작 골수팬들은 이 단어에는 남들이 시니컬하게 부르는 뉘앙스가 담겼다고 해서 ‘트레커(trekker)’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스타트렉의 시초
원조 <스타 트렉>은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연속극이다. ‘스타 트렉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진 로덴버리(Gene Roddenberry)가 기획한 이 시리즈는 1966년 9월에 첫 편인 <맨 트랩(The Man Trap)>이 미국 NBC-TV의 방송을 타면서 시작되었다. 원래 파일롯 에피소드는 1964년에 제작된 <우리(The Cage)>였으나 방송국에서 퇴짜를 놓는 바람에 창고에서 계속 잠자고 있다가 1988년에야 뒤늦게 전파를 타는 기회를 얻었다.
SF연속극이 영상 매체에 등장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모험이었다. 그러나 <스타 트렉>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그 뒤 수십 년 간 텔레비전 드라마는 물론, 극장용 영화시리즈, 만화영화시리즈, 그리고 당대의 내로라하는 SF작가들이 모두 참여한 소설시리즈로 현재까지 미국은 물론, 전 지구적인 지명도를 누리고 있다. 기본 설정은 23세기의 미래사회 시점에서 먼 우주로 탐사를 떠나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와 그 승무원들의 모험담이라는 것인데, 특히 외계인인 스포크 박사와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의 인기는 대단했다.
TV시리즈들
<스타 트렉> 오리지널 시리즈는 1966년 9월부터 연속극으로 정규 방송을 시작했으며 1969년 6월까지 모두 78편의 에피소드가 NBC-TV를 통해 전파를 탔다. 이 최초의 <스타 트렉>이 3년 만에 끝난 이유는 제작비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었는데, 미리 종영을 예고했다가 극성맞은 팬들의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는 바람에 1차 시도는 실패했다. 방송국은 결국 기습적으로 마지막 회를 방영하는 게릴라식 전술로 겨우 끝을 맺었다고 한다.
당시의 제작비 사정이 좋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오늘날 스타 트렉을 대표하는 설정 중 하나인 근거리 공간이동(물질전송) 장면은 사실 단거리용 우주선 세트를 만들 여력이 없어서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낯선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위험에 처하면 아무 때나 모선인 엔터프라이즈호에다 '나를 올려 줘(Beam me up)!' 하고 구조요청을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 물질전송 장치의 아이디어가 과학적 가능성을 따지는 논쟁을 촉발시키고 더 나아가 입자 수준이지만 실험에 성공한 논문까지 나왔으니 결과적으로는 상상력의 자극이 된 셈이다.
오리지널 시리즈가 종영된 뒤 1973년부터 2년간은 만화영화로 각색된 시리즈가 선을 보였고 원작도 각지의 지방방송을 통해 꾸준히 재방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스타 트렉의 팬들은 계속 늘어났는데, 1987년에 새롭게 시작한 <스타 트렉:그 다음 세대>시리즈는 그런 추세를 더욱 가속시킨다.
두 번째 스타 트렉 시리즈의 설정은 전작에서 70년 뒤인 24세기가 배경. 엔터프라이즈호도 새로운 모습으로 재등장하고 승무원들도 새로운 얼굴들로 물갈이되었다. 이 새 시리즈는 1994년까지 장장 7년간이나 이어지면서 광범위하게 트레키들을 양산해 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타 트렉 : 딥 스페이스 나인 (Star Trek : Deep Space Nine)>은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이어진 세 번째 스타 트렉 시리즈이다. 첫 번째 외전이라 할 수 있으며, 우주선이 아니라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작연대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발달된 특수효과(SFX)기술에 힘입어 무척 화려한 그림들을 보여준다.
<스타 트렉 : 보이저 (Star Trek : Voyager)>는 1995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기존의 스타 트렉 배경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 설정을 채택해서 별개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보이저라는 우주선이 까마득한 우주 저편으로 날아가 버리는 사고에 휘말린 뒤 다시 지구로 귀환하기까지의 여정이 펼쳐지며 2001년까지 방송되었다.
<스타 트렉:엔터프라이즈>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방송된 TV시리즈인데, 설정 상으로는 가장 앞선 시대배경을 채택하고 있다. 즉, 모든 <스타 트렉>시리즈들의 '프리퀄(prequel)'인 셈이다.
극장판 시리즈와 소설들
한편 1979년에 처음 발표된 극장판은 수많은 트레키들의 호응에 힘입어 TV와는 별도로 마치 ‘007’시리즈처럼 계속 제작되고 있다. 2002년에 나온 <스타 트렉 : 네메시스>가 열 번째로 만들어진 극장판이었고, 그 이후로도 여러 편이 나왔다.
TV나 극장판과는 상관없이 스타 트렉의 배경만을 차용해서 독자적으로 집필되는 스타트렉 소설 시리즈도 이미 수백 권이 넘게 출간되었다. 예전에 방송되었던 TV시리즈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소설로 각색된 것은 물론이고, 영화화되지 않은 스토리들조차 계속 창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 중 몇몇은 국내에도 번역된 바 있다.
과학기술 마인드의 확산에 기여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스타 트렉>이 없었을 경우 현대 미국의 과학기술 관련 문화가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69년 6월에 첫 TV시리즈가 종영되고 나서 바로 그 다음 달인 7월 20일에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은 역사적인 타이밍도 한 몫 했겠지만, 아무튼 <스타 트렉>이 일반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과학기술적 프런티어’의 이미지는 상당히 깊고 뚜렷했다. ‘합리적이고 진취적이며 건전한 심신을 지닌 인간들의 우주 진출’이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라는 점에 확실한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자리를 잡게 되는 저변에는 과학기술적 낙관주의가 전제처럼 깔리기 마련인데, 바로 <스타 트렉>이 그런 전제를 형성하는데 무시 못 할 공헌을 했음은 틀림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그러한 공헌의 실질적인 측면이라면 무엇보다도 과학적 상상력의 고취를 꼽아야 할 것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물질의 순간이동이라는 아이디어는 원래 제작비 절감을 위해서 나온 고육지책이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아이디어의 현실화를 위한 자극이 되었다. 물질의 원격이동이라는 과제에 꾸준히 매달린 오스트리아와 미국의 연구진들이 마침내 양자의 원격이동 실험에 성공한 것이다. <네이처>지 2004년 6월 17일자에 표제 논문으로 수록된 이 연구는 비록 소립자 수준이긴 하지만 SF적 아이디어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또 다른 예의 하나로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선구적인 전망도 이 시리즈에서 태동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스타 트렉:그 다음 세대>의 주요 등장인물 중에는 안드로이드인 데이터 소령이 있는데,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인 그의 전자두뇌는 경이로움과 의문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스스로 ‘진화’가 가능하다. 데이터 소령은 등장할 때마다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몰두하면서 인간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때론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친구가 되는 길을 선택하고 마는데, 이러한 데이터 소령의 모습은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등의 무시무시한 컴퓨터들과는 달리 인공지능 로봇의 미래상을 거론할 때 모델로 적합한 셈이다.
이밖에도 <스타 트렉>의 수없이 많은 에피소드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된 과학기술적 아이디어의 보고나 다름없을 정도로 풍부한 상상력을 담고 있으며, 특히 1980~90년대로 넘어오면서 그 상상력 자체도 진화하여 훨씬 세련되고 고차원적인 내용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과학기술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분석한 교양과학서들도 여러 종이 출간되었음을 물론이다.
오늘날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강국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에는 각각 <스타 트렉>과 <우주소년 아톰>으로 대표되는 고유의 SF가 존재해왔다. 물론 이들 외에도 숱한 작품들이 있지만, 폭넓은 팬 층을 확보한 유명한 이야기들은 분명 스토리의 재미와는 별개로 과학적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하게 구사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과학문화의 확산에 좋은 SF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우리도 새삼 절실하게 인식해야 마땅할 것이다.
스타 트렉의 빛과 그림자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스타 트렉>은 개척정신과 미래의 진취성을 대변하는 사실상의 신화처럼 자리매김한 면이 있다. 그 탄생부터가 미국식 모험정신의 산물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오리지널 <스타 트렉>에서 가장 유명했던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인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맥락들을 포착해 낼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의 내용은 저명한 SF평론가인 미국 러트거스대학의 브루스 프랭클린 교수가 월남전 당시에 TV로 방영되던 <스타 트렉>을 고찰한 내용 중 일부이다. 이러한 분석은 오늘날 영화나 만화의 형태로 숱하게 접할 수 있는 미국식 SF모험담들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할 지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스타 트렉> 오리지널 TV시리즈의 방송기간인 1966년 9월부터 1969년 6월까지는 미국 역사상 매우 흥미로운 시기였다. 밖으로는 월남전이 한창에다 안으로는 범죄율이 증가하는 한편 반전평화운동의 물결이 거셌고, 여성운동이 부상하는 등 전통적 가치의 붕괴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에 가계 빚까지 늘어난 시기였다. 그러나 스타 트렉의 23세기 미래세계는 사회 갈등이 거의 없이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있으며, 거대한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와 승무원 집단은 그 자체로서 전통적인 미국적 가치를 실현시킨 작은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말하자면 월남전 이후의 장밋빛 미래상을 스타 트렉에서 미리 보여준 셈이다.
1967년 4월에 방송된 <영원의 끝에 있는 도시>는 오늘날 오리지널 TV시리즈 중에서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팬들의 반응이 좋았던 에피소드이지만, 사실은 원작 극본이 심하게 훼손된 사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커크 선장 일행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시간여행을 하여 1930년대의 뉴욕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에디스 키일러라는 천사와 같은 여성을 알게 된다. 그녀는 헌신적인 사회사업가이자 빈민들의 벗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만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의 개연성과 상관관계를 미리 알 수 있는 장치로 검색해 본 결과, 그녀는 곧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죽지 않도록 도와 줄 경우, 나중에는 커크 일행이 역사에서 사라져버리는 운명이 되고 만다. 에디스가 교통사고에서 살아나면 나중에 거대한 평화운동 조직을 만들게 되는데, 그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미국은 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게 되고, 결국은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을 초래하여 커크가 사는 23세기의 행복한 미래세계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자신의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물줄기를 나쁜 쪽으로 돌리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의 원래 대본은 방송된 내용과는 상당히 달랐다. 원작은 시간여행과 역사의 왜곡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멜로에 가까웠을 뿐, 에디스가 평화운동가라던가 반전운동 때문에 세상이 더 부정적으로 바뀌어버린다는 식의 설정은 전혀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방송을 보고 난 시청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전달되었다. 아무리 고상하고 숭고한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라도 역사를 그르칠 수 있으며, 그걸 막기 위해 때로는 더럽고 내키지 않는 일도 불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물론 월남전에 뛰어 든 미국의 입장을 은연중에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 한 가지 예만 놓고 시리즈 전체를 싸잡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사성이 없어 보이는 과학기술적 SF모험물에도 그 심층에는 예외 없이 정치적 함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도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꼼꼼하게 따져보고 소화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거대한 권력인 과학기술을 어떤 시각으로 다루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