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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가 나의 곁에 함께 서기까지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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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의 곁에 함께 서기까지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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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훤칠한 얼굴에 햇볕에 적당히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

 깊은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남청색 눈동자에 짧게 자른 짙은 갈색 머리까지.


 등에는 희귀한 광물인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검이 푸르게 빛나고. 이따금 꺼내 드는 방패 또한 마법이 깃들어있어 은은한 보라색으로 반짝거린다.


 뜨겁게 타오르는 지하세계 '네더(Nether)'를 거쳐 세상의 끝, 엔더(Ender)까지 나아가 끝의 지배자 엔더 드래곤(Ender Dragon)을 쓰러트린 영웅.


 하지만 그 영웅은 지금...



 "아, 또 왜!"


 "..."



 ... 오늘도 변함없이 멀찍이 몸을 숨긴 채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계신다.


 본인 딴에는 기척을 지운 채 잘 숨어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단순한 몬스터들에게나 통하는 수준이고.

 결정적으로 저 나무 뒤로 힐끔 보이는 넓은 어깨는 어떡할건데?


 나는 바닥에 떨어진 돌멩이 하나를 집어 영웅님께서 숨어계신 나무를 향해 세게 집어던졌다.



 텅!


 "숨는다고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좋게 말할 때 나오세요, 스티브 씨. 안 혼낼테니까."


 "..."



 얼씨구? 아닌 척 하시겠다 이거지?

 나는 슬그머니 발소리를 죽여 스티브 씨가 숨어있는 나무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그가 내가 있던 쪽을 돌아보는 그 순간...



 "왁!'


 "으앗!'



 내 기습에 깜짝 놀란 스티브 씨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얼빠진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나는 배를 잡고 깔깔 웃어댔다. 물론 금새 상황을 파악한 스티브 씨의 표정은 심통난 망아지 같았지만.



 "그래서, 오늘은 또 왜 쫓아오신 건데요?"


 "아니, 그냥. 산책이나 갈까 하다가 네가 보여서."



 자리에서 일어난 스티브 씨의 시선이 내 왼팔을 향했다.

 분명 꽉 묶어두었던 것 같은데, 어느 새 풀려버린 붕대가 실바람을 따라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는 묵묵히 손을 뻗어 내 팔의 붕대를 고쳐매주었다. 어찌나 꽉꽉 동여매던지, 내 입에선 비명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아프잖아요!"


 "또 아프다고 대충 동여맸지? 그러다 상처 덧난다. 봐, 제대로 안 하니까 기껏 붙여놓은 약초가 떨어지려 하고 있잖아."


 "난 아저씨보단 젊으니까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도 금방 나을거거든요?"


 "아저씨라니..."



 내 말을 들은 스티브 씨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뭔가 많이 상처받은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진실을 말했는걸? 나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면 그게 아저씨지, 오빠야?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고. 우민 녀석들은 교활하기 때문에 종종 무기에 독을 발라놓기도 하니까. 혹시라도 몸이 뭔가 이상하기라도하다면-"


 "아아, 벌써 몇 번째 말씀하시는 거에요. 이거 보세요! 멀쩡하기만 한데, 뭘."


 "미안하니까 그렇지. 멍청하게 내가 '흉조'에 걸려 있다는 것만 잊지 않았어도..."


 "에헤이! 결과적으로는 다 잘 됐잖아요? 덤벙대다가 다친 절 빼면 마을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기도 하고.. 그리고 저도 덕분에 예상치 못한 신 무기를 얻었는걸요.."


 나는 황급히 밝게 웃으며 손에 쥔 석궁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내 의도가 먹히지 않은건지 스티브 씨의 얼굴엔 금새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어… 나는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찌해야 할 지 몰라서 일단 가던 길이나 계속 가기로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저씨도 그런 나의 뒤를 따라 함께 숲 속을 걸어갔다. 이번에는 숨지도 않고 대놓고, 여전히 우중충해진 얼굴로.



 우리가 처음 서로를 만나게 된 건 나흘 전의 일이었다.


 참나무 숲과 인접해있는 들판 위에 세워진 커다란 마을.

 인생 첫 모험을 떠난 햇병아리 모험가였던 나는 그 곳에서 이틀 째 쉬고 있던 참이었고. 스티브 씨는 빵이나 빈 지도 같은 몇몇 부족한 물품들을 구하러 마침 눈에 띈 마을로 들어선 상황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마을에 들어선 스티브 씨는 닷새 전 우연히 마주쳤던 우민 정찰대를 홀로 쓸어버렸고. 그렇게 얻게 된 저주, '흉조'의 지속 시간을 착각한 그가 마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저주가 발동되어 한 무리의 우민 습격대들이 마을 주변으로 이동해 오게 된 것이었다.


 당연히 마을은 발칵 뒤집혔고, 나를 비롯한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 무기를 들고 우민들에 맞서 마을을 수호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단연 빛나는 이는 따로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지금 내 뒤에서 걷고 있는 바로 저 아저씨였다.


 소환사가 불러낸 벡스들이 검격 한 번에 낙엽처럼 쓰러지고.

 변명자가 살기 위해 도끼를 내던지고 도망치게 만든 남자.


 놈들이 데려 온 파괴수가 괴성을 지르며 그의 검 앞에 쓰러졌을 때.

 그제서야 함께 싸운 모험가들 중 한 명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더랬다.


 '영웅' 이라고.


 네더를 재패한 자. 끝의 세계에 자리잡은 드래곤을 사냥한 영웅.


 하지만 위대하게만 보였던 그의 뒷모습도 잠시.

 나는 지난 나흘동안 매번 내 뒤를 쫓아다니며 미안해하는 스티브 씨를 보면서 적어도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저씨... 사실은 영웅이기 이전에 호구였구나.

 아니, 어쩌면 적어도. 호구가 될 자질이 충분한 순진한 사람이었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지않고서야 누가. 그리고 왜. 다친 사람을 몇 날 며칠에 걸쳐 이렇게 졸졸 쫓아다니면서 계속 신경쓰고 다닌담?

 본인 말대로 엄연히 따지자면 자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사건에서 다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말 내가 다친 건 변명자가 소환해 낸 벡스가 신기해서 잠시 한 눈 팔다가 다가온 약탈자를 못 봐서 생긴 거니까. 어떻게 보면 내 잘못이 더 크단 말이지?


 아, 혹시 네더랑 엔더에서 벌였다는 그 숱한 위업들도 사실은 누가 부탁해서 들어주다가 그렇게 된 거 아니야?

 아니면 뭐어… 설마하니 여자친구분이 지옥의 괴물들이나 드래곤에게 납치라도 당하셨다던가?



 "스티브 아저씨."


 "나 아저씨 아니라니까."


 "아저씨 여자친구 있어요?"


 "없어."


 "뭐야, 칼답이네?"



 의외였다. 아저씨정도나 되는 영웅이라면 예쁜 애인정도는 당연히 있어야되는 거 아닌가?



 "없는거에요, 없었던거에요?"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거야."


 "어째서 그렇게까지 단정지으시는 건데요?"


 "항상 그래왔거든. 내가 좋아하기만 하면 다들 다치거나, 아니면 험한 꼴을 보게되서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스티브 씨는 마침 도착한 물가의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그의 곁에 주저앉아 준비해 온 낚싯대를 꺼내 강물을 향해 던졌다.


 휘익, 첨벙!


 다친 팔이 완전히 나을 때 까지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내가 찾아낸 소일거리였다.

 동시에 앞으로의 여행에서 쓸 식량을 모으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내가 봤을 때, 대충 내 팔이 어느정도 나을 때까진 앞으로 사흘 정도만 더 있으면 될 거 같았다.

 그러면 슬슬 마을에서 거래로 모은 화살꾸러미를 챙겨서 다시 모험길에 올라야지.

 근데 어디로 가지? 대왕 버섯 숲? 사막? 저 멀리 설원?



 "그러고보니,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하나 있기는 하네."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의 귓전으로 스티브 씨의 뜬금없는 얘기가 날아들었다.

 조금 전 까지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듯 우중충해 보이던 아저씨는 이제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조금은 밝아진 얼굴로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내 낚시찌를 바라보고 있었다.


 먹음직스런 미끼를 단 낚싯바늘은 여전히 물 아래서 물고기들을 유혹하고 있었지만. 정작 연어떼는 먹이따윈 관심 밖이라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강가를 헤엄쳐다닐 뿐이었다.

 아무래도 금방 잡힐 것 같진 않아 보여서, 나는 안심하고 그의 말에 호기심어린 대답을 건넸다.



 "좋아했던 여자아이라면... 아저씨 어릴 적 얘기인가요?"


 "응. 이름이 '라나'라고, 나랑 같은 마을 살던 소꿉친구였어."


 "영웅 스티브 씨도 고향 마을이 있고, 소꿉친구가 있었군요? 그것도 여자아이."


 "나도 처음엔 너 같은 모험가였는걸.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아, 저기."


 "앗!"



 스티브 씨의 고갯짓을 본 나는 황급히 낚싯대를 당겼다. 하지만 바늘은 이미 텅 비어버린 상황.

 내 미끼를 떼어먹고 도망간 연어는 마치 날 약올리려는 것 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제 친구들 곁으로 헤엄쳐 가버렸다.



 "잡아줄까?"


 "됐어요. 옷 젖으면 말리기 번거롭잖아요."



 나는 미끼통에서 통통한 지렁이 하나를 꺼내 다시 한 번 낚싯바늘에 꿰어 던졌다.

 참방,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한 번 물 속으로 들어간 낚시찌는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슬그머니 다시 위로 올라왔다.



 "때론 낚싯대로 잡는 것 보다 안에 들어가서 잡는 게 더 빠를 때도 있어. 금방이니까."


 "그치만 이렇게 해야 종종 물고기 말고 다른 것도 낚이는걸요?"


 "뭐, 연꽃잎이라던지. 아니면 인챈트 북 같은 거?"


 "언젠가는 낚이겠죠. 지금은 물고기가 더 절실하지만요."


 "필요하면 하나 줄까? 나 인챈트 북 많은데."


 "어련하시겠어요. 그 구하기 힘들다는 황금 사과도 갖고 계신다는 분이."



 옛날 이야기에서나 들어본 전설의 황금 사과.

 나는 그런 게 실존한다는 걸 습격이 끝난 밤, 축제가 벌어진 술집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마을을 구한 영웅, 스티브 씨가 성화에 못 이겨 하나 둘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가슴 설래고 짜릿한 모험의 연속.

 개중엔 땅 속 깊은곳에 파묻혀버린 오래된 폐광에서 발견한 황금 사과의 이야기도 있었고, 그는 직접 그 자리에서 가방속에 숨겨 둔 황금 사과를 꺼내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내 상상 속에서 갑자기 현실로 튀어나온 황금 사과는 마치 갓 나무에서 딴 사과처럼 싱싱해보였고, 또 완벽한 금색을 띄고 있었다.

 그는 다 같이 맛 좀 보면 안되겠냐는 사람들의 말에 난색을 표하며 사과를 도로 가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지금껏 대여섯 개 정도의 황금 사과를 얻었지만, 전부 엔더 드래곤과 싸울 때 먹어치워 이젠 이거 하나밖에 남지 않았노라고.

 그리고 이건 꼭 주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어 아쉽지만 줄 수 없다고 말이다.



 "아, 혹시. 며칠 전 술집에서 말씀하신 황금 사과를 주기로 한 사람이...?"


 "맞아. 마을을 떠나면서 라나에게 약속했거든. 꼭 전설의 황금 사과를 구해서 돌아오겠다고 말이지."


 "그럼 아저씨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고 계신 길이었네요?"


 "이제 모험은 끝났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스티브 씨는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기도, 또 기뻐 보이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모든 모험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서 그런걸까?

 그런 아저씨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샘이 난 나는 낚싯대를 내팽겨치고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스티브 씨는 눈을 크게 뜨며 무슨 일이냐는 듯 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았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아저씨의 고향!"


 "응? 내 고향? 거긴 가 봤자 별 거 없을건데?"


 "별 게 없다뇨, 무려 '영웅의 고향'인데! 그런 곳은 한 번 쯤 구경해 볼 만 하잖아요?"


 "꼬맹이 너, 분명 모험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어차피 우리가 사는 지상에서의 모험은 다 거기서 거기잖아요. 게이트를 넘어 네더나 엔더로 가지 않는 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겨우 그런 이유로 우리 마을에 가고싶다고? 굳이?"



 어떻게 보면 스티브 씨의 말이 맞다.

 아무리 지상… 다른 표현으로 '오버 월드'에서 겪어볼 수 있는 모험이 한정적이라고는 해도, 내가 굳이 다음 목적지로 아저씨의 고향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나도 내가 왜 굳이 거길 가보고싶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서야 막 세상 구경을 시작했는데, 아저씨는 구경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간다고 하니 부럽기도 하고…

 그것도 그렇지만 요 며칠 동안 친해져버린 아저씨다 보니 궁금해서. 과연 드래곤 슬레이어가 나고 자란 마을은 어떤 곳인지 호기심이 생긴 거겠지. 암.


 아무튼 꼭 가보고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서린 내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이런 날 빤히 바라보던 아저씨가 나지막한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턱, 하고.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짚단처럼 샛노란 머리 위로 얹혀졌다.



 "사흘 뒤."


 "네?"


 "그 때까지 안 나으면 안 데려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와아!"



 예상 외로 손쉽게 허락을 받아낸 나는 기쁜 나머지 스티브 씨를 꼭 끌어안았다.

 갑작스런 포옹에 놀란 그가 억,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침착해진 그의 목소리가 내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꼬맹아. 너 낚싯대 끌려가고 있는데?"


 "네? 아차! 내 낚싯대!"



 황급히 아저씨에게서 떨어진 내 눈에 조금 전 내팽개쳤던 낚싯대가 보였다.

 신나서 마구 헤엄쳐가는 커다란 연어의 뒤에 이끌려 내 낚싯대는 벌써 강 중앙까지 흘러가버린 상황.


 허망하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내 곁에서, 스티브 아저씨가 다시 내게 아까 전의 물음을 던졌다.



 "잡아줄까?"



 난 차마 그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다행히 왼팔의 상처는 약속했던 날이 되기 전에 많이 호전되었고. 스티브 씨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나를 동행자로 받아 주었다.

 마을이 여기서 머냐고 물어보는 나의 말에 그는 손을 들어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을 가리켜 보였다.



 '얼마 안 멀어. 저 산 너머니까.'



 문제는 그가 가리킨 산이 정말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까마득하게 멀리 있었다는 점.


 '얼마 안 멀다더니… 열심히 걸어도 넉 달 이상은 걸리겠는데요?'

 '걷다니? 꼬맹이 너, 설마하니 말 타 본적 없는거야?'


 결국 스티브 씨는 그가 타던 말을 내게 양보하고 즉석에서 새 말을 길들여 타고가야 했다.

 초보 승마자에겐 길이 잘 든 말이 훨씬 타기 쉬울거라나.

 덕분에 나는 여정 내내 그에게 말 타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말을 타고 간대도 약 한 달 정도가 걸린 여정.

 숲을 지나고, 바위산을 넘고.

 하지만 내겐 그 시간들이 모두 새롭고 신선했다.

 스티브 씨와 함께하는 동안 나는 매 순간 모험가로서 이제껏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자, 저기가 내 고향. 알파 마을이야."



 그래서였을까.

 내 눈에 우리가 고대했던 목적지가 다가온 순간 내 가슴속엔 드디어 도착했다는 기쁨이 아닌 다른 감정 하나가 앞서 스쳐갔다.



 "나는 혼자 사니까, 도착하면 네가 묵을 곳을 찾아봐야겠다. 촌장님 아직 계시려나."



 힐끔 바라본 스티브 씨는 나와의 이별이 가까워졌는데도 별로 아쉬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가 타고 있는 말들은 슬슬 마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티브 씨는 자신의 고향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내게 해주고 있었지만 나는 그걸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냥, 이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스티브!"


 "라나?"



 그 때였다.

 마을 입구 쪽에서 유독 붉은 머리칼을 지닌 한 여자가 달려나와 스티브 씨에게 폭 안긴 것은.


 아. 저 사람이 '라나'구나. 아저씨의 소꿉친구였다던.


 라나 씨와 스티브 씨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나는 말에서 내려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꼬맹아?"



 날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여전히 여자친구 분을 끌어안은 아저씨가 날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쉴 곳은 제가 직접 찾아볼께요. 오래간만의 재회일텐데,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나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대답한 뒤 몸을 돌려 걸어갔다.

 아무리 다시 봐도 두 사람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아이디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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