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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가 나의 곁에 함께 서기까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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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의 곁에 함께 서기까지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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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내가 아저씨를 좋아하고 있었나봐."


 푸르륵!



 숱한 갈등과 고민 끝에 내놓은 결론이었지만, 정작 내 곁에서 걷고 있는 말은 고삐를 잡은 제 주인의 말에 고개를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아저씨와 오래도록 여행해왔다는 이 녀석은 종종 사람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굴었다. 그래서 종종 말동무삼아 아저씨 뒷담이라던지,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보곤 했었는데.

 아무래도 녀석은 내가 방금 꺼낸 말이 그저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이 감정을 인정하기가 쉬운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여동안 함께 여행하며 먹고 자고 싸웠던 게 전부였는데.

 심지어 지난번 그 마을에서 그렇게 만나기 전 까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고 살아왔었는데.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게 처음이라 그랬던걸까, 아니면 함께하면서 본 아저씨의 다정함에 내가 반해버리기라도 한 거였을까.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말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그 때였을까? 아니면 내 팔을 잡고 활 쏘는 자세를 교정해주던 그 때?

 아니면... 함께 동굴 안에서 갑자기 내리던 비를 긋던 그 때?



 "...모르겠어."



 그치만 조금 전 라나 씨를 만나 밝게 웃고있던 아저씨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건 나 혼자만 품고 있는 감정일거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진작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해봤을까?


 상념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걸음을 멈춰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스티브 씨의 고향은 꽤 평화롭고 고요한 마을이었다.

 사람들도 웃으며 돌아다니고, 아이들도 삼삼오오 뛰어다니며 노는...


 ...잠시만, 아이들?


 나는 방금 내 곁을 스쳐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누가 봐도 환하게 웃으며 또래들과 뛰어가는 귀여운 아이들이었지만 정작 내 귀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웃고 있는데 소리가 없어...?"



 그러고보니 이상한 점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대장간을 찾아간 사람들도, 농부를 만난 아주머니도.

 마을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말'을 하는 사람은 이 곳에 존재하지가 않았다.

 다들 입을 뻐끔거리며 알 수 없는 손짓발짓을 서로 주고받고 있을 뿐.


 이상함을 느낀 나는 마을 우물가에 서 있는 한 농부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다.

 그는 두레박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 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우물에 몸을 수그린 채 손을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



 가까이 다가간 그에게서 희미하지만 썩은내가 풍겼다.

 나는 농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그에게서 다시 멀어진 뒤,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서 가방을 열고 우유가 담긴 병을 꺼내들었다.

 들판에서 자라며 온갖 약초를 먹고 자란 소에게서 짠 우유에는 마신 사람에게 걸린 온갖 마법적인 효과와 독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을 주변에 이상하게도 소가 보이지 않았어."



 물론 보이지 않았던 것은 소 뿐만이 아니라 돼지와 닭 같은 다른 동물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꿀꺽, 꿀꺽.


 우유 한 병을 다 들이키고 다시 바라본 마을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좀비...?"



 대체 언제부터 환상 마법에 걸려 있었던 걸까?

 조금 전 까지 있었던 밝고 평화로운 마을은 순식간에 정 반대의 모습을 한 진실을 내 눈 앞에 펼쳐보였다.


 자욱히 드리워진 안개 속에서 몸이 온통 썩고 문드러진 채 살아있을 적 마냥 서로에게 손짓하는 좀비들.

 늪에 반쯤 잡아먹힌 길 위를 흥겨운 듯 뛰어다니는 아이 좀비들.

 피 묻은 손자국이 난 깨진 창문 너머로 멍하니 바깥을 응시하고 서 있는 좀비들까지...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

 스티브 아저씨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여기는 분명 이미 마을이 좀비떼에 쓸려나간 지 오래인 유령 마을이었다.



 "잠시만, 그럼 그 '라나'라는 여자는 대체 뭐였던거야?"



 문득 햇살처럼 웃으며 아저씨 품에 뛰어들던 그녀를 떠올리자 내 팔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설마... 이 모든 일을 꾸민 게 그 여자는 아니겠지?



 "아저씨에게 가야겠어."



 나는 느린 걸음으로 말을 이끌며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좀비들은 내가 이들의 정체를 알게된 걸 눈치채진 못 한 모양이었다.


 스티브 씨와 라나 씨는 다행히 헤어졌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을 입구를 따라 들어오면 보이는 중앙의 큰 참나무 아래.

 좀비들과 맞서 싸우다 옮겨붙은 불에 타버린 듯 참나무의 모습은 꽤나 흉물스러웠지만, 아저씨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 듯 그나마 약간 드리워진 그늘 아래에서 라나 씨와 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뛰쳐가기엔 꽤 심각해보이는 분위기였기에 나는 잠시 말을 한쪽에 묶어두고 슬그머니 두 사람 가까운 곳으로 다가갔다.

 워낙 조심스럽게 다가간 덕분에 두 사람은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럼 다 구해온거야? 전부 나를 위해서?"


 "어. 가스트의 눈물, 엔더 드래곤의 피와 숨결, 엔더 우물의 물 한 병, 그리고 황금사과랑..."


 "알은? 엔더 드래곤의 알 말이야, 스티브. 난 그것도 필요하단 말이야."


 "미안해. 그건 가져올 수가 없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뭔지 모르겠지만 잔뜩 실망한 듯 한 라나 씨가 스티브 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꽤나 큰 소리였지만 주위에 그 누구도 이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 그런거였구나. 나는 왠지 모르겠지만 납득할 수 있었다. 이 좀비들의 주인은 바로 라나 씨라는 것을.



 "그럴 순 없었어. 그 알을 가져가버리면 다음 세대의 엔더 드래곤은 태어나지 않으니까."


 "너도 그녀의 목을 베었다면 들었을 거 아냐. 이 세계를 만든 창조자들의 메시지를!"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내가 잘못 들은건가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방금 뭐라고 했지? '창조자들'이라고? 이 세계를 만든?



 "그래.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엔더 드래곤은 엔더 드래곤인 거야. 엔더 드래곤은 창조자들의 뜻에 따라 항상 그 곳에서 세상의 끝을 지키는 존재인거고, 그렇기때문에 죽으면 자신이 낳은 알에서 환생한다고 그녀가 말해주었어. 그런데 그걸 내가 여기로 가져오게 되면 그건..."


 "뭐 어때? 스티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


 "왜 대답하지 않아? 스티브, 넌 날 무척 사랑했었잖아. 안 그래? 그래서 내 오라버니들이 있었던 때에도..."


 "...라나. 미안하지만 이젠 네게 진실을 말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스티브 씨가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두 손을 완곡하게 떼어내었다.

 라나 씨의 어여쁜 얼굴에 당황스런 감정이 적나라하게 묻어났다.



 "라나. 네가 사랑했던 '스티브'는 내 아버지야. 난 그의 아들인거고."


 "...스티브?"


 "아버지도, 너도. 죽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 그런데 아직도 넌 여전히 여길 배회하면서 나를 내 아버지였던 스티브로 오해하고 있는 거고."


 "농담하지 마. 이렇게나 얼굴도, 이름도. 똑같은걸?"


 "아들이니까 닮는건 당연한거고, 이름을 물려받는 것 또한 마찬가지인거야. 떠올려 봐, 넌 분명 내 아버지의 죽음을 본 적이 있을테니까."



 나는 다시 한 번 내 귀를 후비적거렸다.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스티브 씨의 소꿉친구였던 라나 씨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던 거고. 스티브 씨의 아버님과 친구였던 사이였었는데...

 으으, 모르겠네. 이게 대체 다 무슨 소리람?



 "아하하하!"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있던 내 귓가에 라나 씨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처럼 낭랑한 웃음소리였건만, 다시 한 번 내 팔 위에 소름이 돋아나는 건 왜 였을까?



 "상관없어. 스티브, 난 너만 있어주면 돼. 그래서 창조자들이 내 오라버니들을 세상에서 없애버렸을 때에도 나는 이렇게 발버둥쳐가며 버틴거니까. 사라지지 않으려고."


 "..."


 "그냥 여기서 나와 영원히 함께 있어주면 안 되는거야? 왜애? '모험을 끝낸 영웅은 온갖 보물들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거 네가 어릴 적 그토록 좋아했던 결말이었잖아. 나와 함께 하는 게 그 결말이야."


 "아니, 그런 결말이라면 더더욱 난 너와 함께하지 않으려고. 왜냐하면 난,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어... 어?

 방금, 아저씨가 뭐라고 하신 거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시다고?

 라나 씨가 아닌, 다른 사랑하는 사람?


 내가 숨어든 덤불 너머로 보이는 라나 씨의 얼굴은 이제 분노로 가득 얼룩져 있었다.

 저렇게 보니 그토록 아름답던 그녀의 얼굴은 마치 잔뜩 심통난 개구리 같아 보였다.

 그런데 대체 이 상황에서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지금 뛰쳐나가서 아저씨에게 우유를 건네줘야 하는 건가?

 뭐라고 하면서 건네줘야 하는 거지? 저 여자가 마녀라고? 이 마을은 사실 좀비들로 가득 찬 유령 마을이라고?



 "아아, 그렇구나."



 갑자기 가라앉은 라나 씨의 목소리가 덤불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분노라기보단 차라리 광기에 더욱 가까운 그런 음색이었다.



 "아까 같이 들어온 그 노란 머리 아가씨가 네 '사랑하는 사람'인거야? 근데 어쩌지?"


 우으으- 우우우-



 라나 씨의 목소리가 다시 이전처럼 낭랑해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모든 좀비들이 일제히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흐리멍텅해진 붉은 눈동자에 둘러싸인 나는 오싹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아가씨, 이제 곧 죽을 운명인데 말이야?"


 "뭐? 설마...!"



 주민들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좀비들은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고, 나는 황급히 등에 매고 있던 활을 꺼내어 가장 가까이 있는 좀비들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크악! 크아악! 털썩!


 다행히 내 활 솜씨는 이전보다 나아져 있어서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녀석들에 대해 명중도가 높은 편이었다.

 사거리 안으로 파고드는 녀석들은 아저씨가 가르쳐 준 대로 활을 휘둘러 밀어내면 그만.



 "꼬맹아!"


 "안 돼, 스티브! 저건 네가 그녀를 사랑해서 생긴 '벌'이니까."


 "벌이라고?"


 "네가 사랑했던 여자들. 하나같이 다치거나, 혹은 죽었지 않아?"


 "설마..."


 "맞아. 네 아버지는 놓쳤지만, 넌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의 목소리가 중간중간 들려왔지만, 나는 그 쪽을 향해 고개 돌릴 새가 없었다.

 좀비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얼핏 저쪽에서 스티브 씨가 뽑아든 마법검의 푸른 빛이 번뜩인 것도 같았지만, 몰려든 좀비들의 수가 너무 많아 잘 보이지가 않았다.


 이러다 물리기라도 하면 나도 저렇게 변해버리는 걸까?

 눈 구멍이 빈 좀비 하나를 넘어트리면서 떠오른 상념이 나를 조금씩 두려움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늪 속에서 튀어나온 듯 온 몸에서 물을 흘리는 좀비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어쩌면 여기가 내 여정의 끝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아악!"



 전열이 무너지는 건 그야말로 한 순간이었다.

 사실 수십 마리의 좀비를 상대로 검도 아닌 활을 들고 여기까지 버틴 것도 정말 오래 버틴 거였다.

 화살이 바닥남과 동시에 옆에서 치고 들어온 좀비가 내 팔을 물었고, 활을 휘두를 새도 없이 우르르 달려든 좀비들이 사방에서 내게 달려들었다.



 "안 돼! 꼬맹아!"



 귓가를 메우는 그르륵 거리는 소리들 너머로 아저씨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 진짜 여기까지였나봐.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 내 마음을 좀 확인해 볼껄. 그래서 아저씨에게 고백이라도 해 볼껄...



 "스티브, 그러지 마. 그건 안 돼!"


 "난 분명 좋게 해결하려고 했어.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 라나."


 "안 돼... 안 돼!"



 쾅! 콰광!


 멀어져가는 의식 너머로 라나 씨의 비명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터지는 듯 한 소리가 들렸다.

 서서히 감겨가는 시야에 보이는 건 좀비떼 너머로 터져나가는 붉은 화염.


 저게 대체 뭘까? 정신이 흐려져가는 와중에도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난 영영 저게 뭐였는지 알 수 없겠지...




 "...어나, 야! 꼬맹아!"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건 나를 안고 있던 스티브 씨의 얼굴이었다.

 아저씨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설마 나 때문에 운 걸까?



 "아저...씨?"


 "다행이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나를 꼭 끌어안은 그의 품에서 짙은 유황과 화약의 냄새가 났다.

 어? 잠시만. 냄새? 나 그럼 무사한거야? 이거 꿈 아닌거야?



 "자, 잠시만요. 나 분명 좀비한테 물렸었는데?"


 "치료했으니까 됐어. 괜찮아. 넌 무사하니까."


 "치료...요?"



 아저씨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내 주변에 어지러이 뭔가 널려 있었다.

 빈 병이랑 고갱이만 남은 사과. 특이한 점은 고갱이 윗부분의 사과 색이 금색이라는 것...?



 "아, 아저씨. 저거 혹시 그 황금 사과..."


 "맞아. 황금 사과가 좀비 병의 유일한 치료제거든. 하나밖에 없어서 너만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럼..."



 서서히 몸에 힘이 돌아오면서 나는 주변을 조금 더 멀리 돌아볼 수 있었다.

 마을은 온통 크리퍼들이 몰려와 터진 것 마냥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크고 작은 크레이터들은 물론, 아직 꺼지지 않은 불이 지붕 위에서 타오르고 있는 반파된 건물들까지.


 윗동이 완전 날아가버린 참나무가 보이자 나는 문득 아저씨가 저 아래에서 라나 씨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있죠, 아저씨."


 "왜, 꼬맹아."


 "아까전에 저 들었는데. 아저씨한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



 아저씨는 대답 대신 얼굴을 붉혔다. 갈 곳 잃은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본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 꼬맹아."


 "좋아해요."


 "...뭐?"


 "저도 좋아한다고요. 아저씨를."



 갑작스런 내 고백에 놀란 스티브 씨가 눈을 마주치자, 난 기다렸다는 듯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들려주었다.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고 나서 그런지 내 감정은 더욱 선명해져있었다.

 내게 자신의 말 고삐를 건네주던 그 때도.

 뒤에서 날 품어안고 활을 고쳐잡아주던 그 때에도.

 비가 그치길 기다리다 잠든 내게 모포를 덮어주던 그 때에도.

 아니, 사실은 내가 아저씨네 마을에 같이 가고싶다고 떼 쓰던 그 날. 아저씨가 내 팔에 묶인 붕대를 다시 감아주던 그 때 부터 이미 아저씨를 향한 내 감정은 피어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아... 대체 언제 그걸 들은거야."



 꼭 그 날 처럼, 스티브 씨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턱, 하고. 내 머리 위로 손을 얹더니만 천천히 내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분명 내가 말했을텐데. 아저씨 아니라고."


 "그치만 다섯 살이나 차이나는데요?"


 "꼬맹아, 넌 그럼 애인 될 사람을 '아저씨'라 부르고 싶어?"


 "아니요, 오빠."



 나는 아저씨, 아니 스티브 '오빠'에게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그제야 맘에 들었던듯 오빠도 내게 다정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마을이 이 모양이 되서 어떡해요? 당장 오늘 잘 곳도 없을 거 같은데?"


 "그러게. 화염구를 너무 많이 던졌나... 일단 오늘은 그나마 상태 괜찮은 곳 찾아서 하룻밤 묵고, 내일 다른 마을을 향해 떠나는걸로 하자."



 어색한 미소를 지은 스티브 오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가까운 건물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따라 일어난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함께 걸으며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라나 씨랑 했던 얘기들 그거 다 뭐에요? 창조자들? 메시지? 가스트? 그리고 아까 펑! 하고 터졌던 건 또 뭔데요? 그게 화염구라는 거에요?"


 "나중에 하나하나 알려줄께. 어차피 우리에겐 시간이 많잖아?"


 "꼭 알려주시기에요!"


 "약속할께. 아니, 아예 데려가서 직접 보여줄께, 꼬맹아."


 "아이, 꼬맹이라 부르지 말고 제 이름 좀 불러줘요. 오빠는 애인 될 사람을 계속 '꼬맹이'라고 부르고 싶으세요? 겨우 5살 차이 나는데."


 "알았어, '알렉스'."



 날 불러주는 그의 호칭이 '꼬맹이'에서 내 이름으로 바뀐 그 순간.

 나는 너무나도 기뻐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이아몬드로 된 푸른 검을 들고 뜨겁게 타오르는 지하세계 '네더'와 세상의 끝, '엔더'까지 모험했던 위대한 영웅.


 이제 그 영웅은 더 이상 내 뒤에서 몰래 쫓아오지 않고 내 곁에서 나란히 손을 잡고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이 나와 함께 다시 한 번 네더와 엔더에 가 닿을 때 까지. 그리고 그 시간들을 넘어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데 알렉스, 네가 데려갔던 말은 어딨어?"


 "아... 설마 폭발에 휘말려 죽어버린 건 아니겠죠?"


 "이런."



 앞으로도 계속 우리는 함께일 것이다.

아이디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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