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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쌍두 독수리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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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두 독수리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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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튀르크 공항, 이제는 신 이스탄불 공항의 텔레비전에는 연이은 폭격과 장갑차들의 영상이 연신 나오고 있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의 밀고 밀리는 싸움은 끝나지 않을 듯 했다. 식당을 가득 채운 물담배 연기를 뒤로 한 채 유리는 계산을 하고 나왔다. 5월의 마지막 날 이스탄불의 무더위는 한껏 다가와 있었다. 그는 셔츠를 걷어붙였다. 강한 태양에 그을린 피부는 아마 겨울이 와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8시에 만나.”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공항버스에 올랐다.

 

페네르 지구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이질적인 곳이었다. 낡은 오스만식 아파트들이 가득한 조용하고 한적한 로컬 구역 느낌이지만 중간중간 무너진 비잔틴 성벽에 그려진 화려한 그래피티와 밤까지 문을 닫지 않는 아방가르드한 카페들은 이곳을 배낭여행객들의 성지로 만들었다. 유리는 카페 주인의 안내를 받아 나선형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의 아뜰리에에 맥시스커트를 걸친 여인이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주 이스탄불 러시아 영사관의 직원 록산이었다. 여인이 일어나자 그는 여인의 양 볼에 뺨을 갖다 댔다. 직원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2층으로 올라왔다.

“3년을 여기 있었지만 이스탄불에 이런 곳이 있을 줄 몰랐는걸? 탁심의 디저트 전문점보다 훨씬 나은데?”

유리가 포크로 아이스크림을 눌렀다. 염소젖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은 마치 소고기처럼 탄성을 지녔다. 그녀는 한입 가득 아이스크림을 나이프로 잘라 넣었다.

아이스크림 스테이크라. 진짜 여기 사람들 상상력은 놀라워!”

유리, 베이루트에서는 이런 거 못 먹었을텐데 온 김에 많이 먹고 가. 아니, 당분간은 많이 먹겠다.”

유리가 카페의 구석자리와 테라스를 꼼꼼히 쓸어보았다. 혹시 모를 도청장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거리엔 장갑차와 무장경관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바다 건너 탁심의 광장에는 전차와 군인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공항과 민간인을 향한 폭탄 테러가 속출하고 있었다. 몰려드는 난민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 시위가 연달아 있었지만 신이슬람주의를 표방한 정권은 복지부동이었다. 오히려 탱크와 장갑차는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었다.

갑자기 복귀명령을 내린 이유가 뭐지? 우리가 반란군을 밀어내고 있었잖아.”

유리가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였다. 불과 하루 전까지 그는 국경도시의 시리아 정교회 민병대를 이끌고 있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학살당하고 고통 당하던 정교회인들은 차라리 정부군의 편에 서기로 했다. 1년 전까지 총조차 잡아본 적이 없던 이들이 강도 높은 훈련의 결과 이제는 마을을 침략하는 반란군과 IS를 여러번 격퇴해냈다. 다음날 아침 그들의 교관이 사라졌다는 것을 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는 마시던 커피 잔의 찌꺼기를 차받침에 털어냈다. 그리고 커피잔을 다시 돌렸다. 록산이 조용히 그 모습을 구경하다 입을 떼었다.

루카 소령이 사라졌어. 그를 찾으라는 지령이 내려왔어.”

록산이 그의 앞에 USB를 내밀었다.

왜 하필 우리지?”

남자는 USB를 받아 세첼백에 집어넣었다.

정확히는 너야.”

민병대원들은?”

커피자국은 독수리를 나타내고 있었다. 커피 점에서 독수리는 흉조였다.

상부에서는 이 임무가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어. 스페츠나츠 .”

우리는 루카 소령이 누군지도 모르잖아.”

지부장님 결재 하에 FSB에 자료를 요청해놨어. 아마 곧 받을 수 있을 거야.”

누가 좀 우리 민병대원들을 챙겨줬으면 좋겠는데.”

스페츠나츠 자슬론에서 교관을 파견한다는 지령이야. 민병대가 지키는 곳은 어쨌든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니까.”

록산이 입을 닦았다. 그리고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유리에게 넘겨주었다. 사전만큼이나 두꺼웠다.

너는, 영사관에서 계속 임무를 지원해 줄꺼지?”

아니, 본국으로 돌아가게 됬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거든. 후임자가 올 거야.”

담담하던 유리의 표정에

“3년 만인가? 고향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

고향의 맛을 느껴야지. 도시락 라면을 먹을거야.”

록산이 유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계단을 내려갔다.

 

유리가 아파트로 들어서 컴퓨터를 확인했다. 사진이 한 장 와 있었다.

그는 프로그램을 돌려 사진을 코드로 변환했다. 코드를 메모지에 기입했다. 그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켠 뒤 fonsi. despasito를 들었다. 이윽고 음악은 문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의 빙하 속에 위치한 스베딘스크는 지도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은 비밀도시였다.

 

흐루시초프는 그 빙하 속에 러시아가 공격당할 시 발사할 icbm들을 숨겨두었다. 소련이 멸망하고 비밀도시를 찾기 위한 여러 나라의 스파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루카 소령은 이 도시의 경비시스템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 근해 순찰을 돌던 중 사라졌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항로에 대한 각 국의 관심이 커지면서 탐험을 위한 배들이 늘어났다. 법적으로 공해인 그곳의 통행을 막을 수 없었기에 러시아정부로서는 루카 소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도시로 들어가는 항로 및 경보시스템을 아는 그가 혹시 적국에 넘어간다면 러시아로서는 큰 손해였다. SVR 이스탄불 지부로 지시전문이 온 까닭은 명확했다. 루카 소령이 사라지자 국내정보부 FSB는 러시아 쇄빙선의 교신과 각 항구의 입항기록을 조합하여 최후 교신 후 루카 소령의 위치와 가장 가까운 곳을 항해하던 배를 알아냈다. 터키 국적의 해양연구선 첼레비호였다.

 

그가 맡게 될 새로운 인물정보집을 폈다. ‘티무르 바투예노프, 키르키즈스탄 출신, 키르키즈스탄에 수족관을 만들기 위한 관광청 공무원으로서 교육생 신분으로 아쿠아리스트 과정에 참가.’ 그의 자서전에 필적할 만한 두께의 설명과 사진, 증명서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마침내 모두 기억하여 마치 그의 인생인 양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그는 자료들을 외우고 또 외웠다. 자고 일어나면 그는 티무르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문득 시리아에서의 날들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그는 온전히 그의 이름을 쓸 수 있었다. 그는 그들과 함께 붉은 터번을 쓰고 있었다. 첫 전투에서 적을 격퇴하고 벌어진 마을 잔치에서 그는 부대원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의 본명은 일리치였다.


그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문화인류학과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러시아의 녹록지 않은 경제사정 속에서 문화인류학과 졸업생이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오랜 시간 러시아는 빈곤 속에 허우적댔다.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재벌들, 레드 마피아가 경제를 틀어쥐었고 엄청난 실업난에 빠진 국민들은 좌절했다.


석사논문의 심사가 끝나자 그는 거취를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양복을 입은 남자가 찾아왔다. 축치족에 대한 그의 논문들을 인상깊게 봤다는 것이었다. 배타성이 짙은 축치족은 연구자들과 취재자들의 손길을 꺼렸다. 하지만 그의 논문 속에서 축치족과의 친근함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는 것이었다. 높은 급여와 전공을 마음껏 살릴 수 있다는 말에 매혹되었고 그는 훈련소로 들어갔다.

그는 첩보원의 생에 만족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가 맡은 임무들은 그의 전공적 지식을 더욱 빛나게 했다.


러시아의 첩보원들은 세계를 무대로 비지니스를 시작하고 있었다. 무기는 식량만큼이나 비탄력수요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산 무기가 지배하고 있는 시장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제 무기들은 첨단 기술과 선진적 군사기술이 없는 국가에서도 능숙하게 제 기능을 해냈다. 또한 그러한 국가들은 대다수가 분쟁국가였다. 첩보와 전쟁이 러시아를 먹여살리고 있었다. 분쟁지역의 소수민족을 지원하는 능력으로 그는 늦은 나이에 첩보원이 되었음에도 SVR에서 어느덧 신임받는 요원이 되어있었다.

 


SVR은 놀라운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티무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정 등록의 모든 절차가 완료되어 있었다. 심지어 키르키즈스탄 대사까지 수염이 까끌한 뺨을 그의 뺨에 부볐다. 키르키즈스탄에 수족관을 도입하려는 야심찬 유학생이 그의 정체였다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이스탄불 외각에 위치한 sea life center 수족관에 도착했다.


잠시 뒤, 수족관 직원의 안내에 따라 홀로 이동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각 국가의 아쿠아리스트들이 모여있었다.

그는 쿠바에서 온 아쿠아리스트와 한 조가 되었다.

그들은 돌고래 수조를 맡았다. 첩보원의 기본은 대상과의 라포르 구축이다. 유리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상어 하고싶었는데.”

저도요. 돌고래가 예쁘긴 예쁘네요.”

티무르입니다.”

마리아라고 해요.”

둘은 어색하게 인사했다. 갈색 눈과 검은 눈이 반짝이며 마주쳤다.

 

흰 돌고래들이 수조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들이 지르는 울음소리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을 방불케 했다.


둘은 먹이를 준비하기 위해 직원의 안내를 받아 수조 뒤에 위치한 냉동창고로 들어갔다. 돌고래의 먹이인 오징어는 꽁꽁 얼어 있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징어를 손질하는 것이었다. 오징어를 회칼로 분리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티무르는 여러번 칼로 오징어를 내려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으로 하는 거 아녜요. 줘봐요.” 마리아가 미지근한 물에 칼과 오징어를 적셨다.

칼을 들어 능숙하게 오징어를 손질해내는 그녀의 모습을 티무르는 넋을 놓고 쳐다보았다.


잠시 후 둘은 먹이를 양동이에 담아 돌고래 수조로 다시 들어갔다. 잠수복을 입고 산소통을 체크했다.

스쿠버다이빙은 할 줄 아시죠?”

, 물론이죠.”

티무르는 한번 심호흡을 한 뒤 물 속으로 들어갔다. 둘은 이윽고 수조 바닥에서 돌고래들을 불러 먹이를 주었다. 먹이를 낚아채는 돌고래는 거대한 럭비공을 방불케 했다. 티무르는 번번히 손에서 먹이를 놓쳤다.

좀 잘해봐요!”

마리아가 시범을 보였다. 티무르는 따라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왜이렇게 겁이 많아요?”

마리아가 도끼눈을 떴다.

첫날은 돌고래 수조를 청소하고 먹이를 준 뒤 퇴근했다. 대상과의 라포르 구축은 실패한 듯했다.

유리는 오랜만에 죽은 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침대에서 깨어나자 온 몸은 땀범벅이 되어있었다. 19세기를 방불케하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 공동 현관의 문을 열었다. 이스탄불의 더위는 새벽공기에 조금 수그러들었다. 유리는 파스텔 톤 집들이 잔뜩 들어선 골목을 따라 내려갔다.

골목의 끝, 거대한 축대 위에 성 요르고스 성당이 있었다. 네오바로크 양식의 육중한 건물에는 쌍두독수리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1억이 믿는 세계 정교회의 중심이었다. 잘 가꿔진 정원에는 장미가 정갈하게 피어 있었다. 터키 교무성 직원들이 하품을 하며 지키고 있는 안내데스크와 금속탐지기를 지나 유리는 본당으로 들어갔다.


러시아인?”사제가 난감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계 총대주교구와 러시아 정교회의 갈등은 분열로 이어졌고 서로 간에 성사 교류를 금지한다는 교령을 서로 선포했다.

그는 성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는 불가리아 정교회의 성 스테판 성당으로 향했다. 흰 강철로 몸체를 장식한 성당 위 황금색 돔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뜰을 지나 정문으로 들어서자 신부가 초를 켜고 있었다.

 

불가리아의 청소년들이 교사를 따라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요르고스 성당에 비해 화려함은 덜했지만 비잔틴풍의 정통 이콘에 비해 현대화풍이 섞인 성화들은 방문자들에게 신앙적 엄숙함보다는 좀더 가벼운 천국의 환희를 느낄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유리는 교회 2층의 고해실로 올라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고해소 안으로 들어가 유리는 성호를 그었다.

잘 찾아오셨군요. 아시다시피 본의아닌 사정으로 접선지를 급하게 변경하게 된 것 사과드립니다.”

신부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록산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칼로얀 신부님.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칼로얀 신부가 녹음기를 틀었다. 중저음으로 기도하는 목소리는 고해실의 목소리를 묻어주었다.

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당장의 인상착의부터가 없는걸요. ”

유리가 불만스레 말했다.  


압니다, 하지만 기밀 중의 기밀이라 공작관님께 함부로 접속 권한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상부의 공식적 입장입니다. 대신 이걸 가지고 가세요.”

신부가 성물 케이스를 칸막이 사이로 밀었다. 유리가 성물케이스를 열자 그 곳에는 컨텍트 렌즈가 들어있었다.


이게 뭡니까?”

기지에는 특유한 방사성 원소가 있어요. 기지에 한 번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이 원소에 누출되어요. 하루에 한 번 비밀도시 전체에 원소를 쏘니까요. 인체나 생물에는 무해하지만 그것을 통해 외부인을 식별하죠.”

이 장치는 그 원소를 탐지하는 장치입니다. 이 원소의 반감기는 한 달이에요. ! 이 원소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과 접촉한 사람도 원소가 묻기도 해요! 그걸 생각한다면 나름 탐색에 도움이 될 지도요.”

루카를 찾는다면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회유해야겠지요. 안된다면, 그땐 .”

유리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두통이 밀려왔다.

모스크바 본부에서도 공작관 님을 지원하기 위해 조만간 한 분 내려오신다고 하네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FSB와 해군성에 정보도 요청해보겠습니다.”

신부의 말에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부서를 자극하여 좋을 것은 없었다.

, 미국에서도 움직였다는 소식이 있어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사제가 창살 너머로 기계를 건낸 후 기도를 하고 나갔다.

 

이스탄불은 볼 거리도 흥미거리도 많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연수생들은 곧 이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유리의 공작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어떻게 보면 혼자 떨어져버린 연수생들에게 스탐볼은 외로움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커피, 서예, 나이트라이프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준계엄령의 엄준한 분위기도 터키 사람들과 여행객의 특유의 낙천성을 막지 못했다. 록산이 준 정보는 훌륭했다.첩보원들의 회동은 주로 맛집에서 이루어졌다. 연수생 사이에 맛집 가이드 역할을 함으로써 유리는 어느새 모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가 받은 콘텍트렌즈는 기술의 집약체였지만 반면 배터리 수명이 짧았기에 아껴써야 했다. 특히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터키에서는 더더욱 러시아 정보부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향후 추후 보급이 있겠지만 그동안은 이것 만으로 버텨야 했다.

아이디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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