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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편] 마법사의 딜라이트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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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마법사의 딜라이트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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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나른하다 못해 지루한 오후였다. 카페를 오픈한 오전 시간에는 손님이 조금 몰리는가 싶더니, 오후가 되자 카페 안과 바깥의 거리까지 한산해졌다. 그런 탓에 졸음이 몰려왔다. 카운터에 앉아서 자꾸만 앞으로 숙어지는 고개를 몇 번이나 바로 세웠는지 모르겠다. 커피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카페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아벨, 딜라이트(delight) 한 잔만 줄 수 있어?”

 

 

 

손님은 바로 옆 건물에서 마도서를 파는 덱스터 아저씨였다. 라플란드 상점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그래도 조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아벨은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 당연히 되죠!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시원하게 부탁해!”

 

, 그럴게요.”

 

 

 

아벨은 빈자리를 찾아가는 덱스터의 표정을 쫓았다. 그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함께 묘한 서글픔이 묻어났다.

 

 

 

딜라이트를 주문하는 손님 대부분이 저런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아벨은 요즘 딜라이트를 만들기가 싫었다. 하지만 일반 커피보다 값이 훨씬 비싼 메뉴였기에, 찾는 손님이 있는 한 만드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벨은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선반 위에 소분해서 담아둔 원두 자루를 끄집어 내렸다. 자루에 묶어둔 끈을 풀고서, 두 손을 집어넣어 원두를 한 줌 꺼냈다.

 

 

 

카르파티아 원두는 색과 향이 모두 선명하고 좋다. 카르파티아 산맥이 자리하고 있는 남부 지역은 마법사들의 휴양지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었다. 그 지역의 원두를 쓰고 있으면서도, 직접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곳은 마법사의 휴양지였다. 능력이 낮아서 다른 일을 하는 마법사 말고, 마법을 다루는 일을 하는 진짜마법사들이 가는 곳.

 

 

 

아벨은 모은 두 손에 담겨있는 원두를 바라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동시에 반짝거리는 황금빛이 손에서 흘러나와 원두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반질반질한 갈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던 원두에 노란빛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마법으로는 딜라이트의 효과가 나지 않기 때문에, 커피가 완성되기까지 몇 번 더 마법을 불어넣어 줘야 했다.

 

 

 

일단 한 번의 마법을 부여한 원두를, 원두 가는 기계인 핸드밀에 넣었다.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원두를 갈고 있으니, 잡다한 생각들이 차츰 잊혔다.

 

 

 

원하는 굵기로 잘 갈린 원두 가루를 보자 흡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벨은 손을 더욱 부지런히 놀렸다. 커피를 내릴 때 사용하는 도구인 드리퍼를 꺼내서 얼음을 담은 유리병 위에 올렸다. 드리퍼 안쪽에 얇은 천을 한 장 깔고서, 방금 갈아 향긋함이 깊게 배어나는 원두 가루를 조심스럽게 옮겨 담았다.

 

 

 

물 주전자에 손등을 가져다 대서 온도를 확인하고 난 후에, 드리퍼에 담겨있는 원두 가루 위로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선형을 그리며 일정한 방향과 속도로 물을 부으면,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커피 향이 퍼졌다. 드리퍼 아래에 두었던 투명한 유리병에는 금빛의 마법을 머금은 커피가 아름답게 채워지고 있었다.

 

 

 

커피가 다 내려지자 아벨은 찻장을 열어 잔을 살폈다. 손잡이가 없는 원기둥 모양의 유리잔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잔을 꺼내서 먼저 얼음을 담았다. 이어서 잘 내려진 커피를 유리잔에 부었다.

 

 

 

진한 갈색의 액체는 중간중간 불어넣었던 마법 때문에 처음보다 더 선명한 황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얼음 사이로 타고 들어간 커피가 금세 유리잔을 가득 채웠다.

 

 

 

긴 티스푼을 들어 얼음과 커피를 섞었다. 유리잔과 얼음이 맞부딪히며 내는 달그락 소리가 듣기 좋았다. 잔을 다시 만져보니 충분히 차가워진 게 느껴졌다. 어느새 유리잔에는 투명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커피 고유의 진한 갈색과 금빛 마법이 물방울에 비쳐 반짝거렸다.

 

 

 

막 완성된 딜라이트를 서둘러 덱스터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며 유리잔을 집어 들었다. 꿀떡대는 소리와 함께 커피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저렇게 급하게 마시는 걸 보니 갈증이 났나 보다. 어떤 갈증일까? 행복. 성공. 명예. 아니면 오늘도 역시나 그것이려나...? 15분 후면 어련히 알게 되겠지.

 

 

 

어느새 딜라이트를 바닥까지 비운 덱스터가 자세까지 고쳐 앉고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을 자는 건 아니었고,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몇 초 만에 다시 눈을 뜬 덱스터는 아까와는 다른 풍경의 장소에 있었다. 그곳은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었다.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보금자리. 라플란드 상점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소소하면서도 예쁜 집. 덱스터는 이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였다.

 

 

 

식탁에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케이크에는 10개의 초가 꽂혀 있었다. 이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덱스터의 딸, 마리가 감출 수 없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마주 봤다.

 

 

 

딜라이트를 처음 마시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마실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스러운 딸과 눈이 마주치자 그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눈물이 터져 나오려고 했지만, 이 시간을 우는 데에 다 쓰고 싶지는 않았다.

 

 

 

초에 불을 붙이고, 노래를 같이 부르고, 케이크를 먹는 내내 덱스터는 마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마리가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아빠!”

 

“......”

 

 

 

덱스터는 목이 메어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마리는 옆에 있는 엄마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엄마, 아빠가 울어요. 아빠!”

 

 

 

마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덱스터에게 달려가 안겼다. 그녀의 눈망울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덱스터는 속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맑게 웃고 있던 아이였는데. 행복한 순간을 자신이 다 망쳐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서둘러 울음을 삼키고 대답했다.

 

 

 

마리, 미안. 아빠가 너무 행복해서 그랬어.”

 

정말요?”

 

 

 

덱스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그의 품에 쏙 안겼다. 덱스터는 그런 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꼭 끌어안았다. 맞은편에는 두 사람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아내가 있었다.

 

 

 

덱스터는 아내를 보자 무어라 외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리를 절대로 혼자 두지 말라고, 그는 아내를 붙잡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아니, 실은 자신에게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갑자기 주위의 풍경이 순식간에 뒤엉키며 번져나갔다. 마치 물에 물감 한 방울을 톡, 떨어트린 것처럼.

 

 

 

눈앞에 있던 아내는 바람처럼 흩어져버렸고, 품속의 따뜻함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은 어느새 카페의 풍경으로 되돌아갔다.

 

 

 

덱스터가 딜라이트를 마시고 15분이 흐른 뒤였다. 아벨은 물 한잔을 떠서 덱스터에게 권했다. 물잔을 건네받은 그의 손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아벨, 항상 느끼는 거지만 15분은 너무 짧아.”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한 거예요.”

 

알지. 그냥 아쉬워서 한 소리니까 나쁘게 듣지는 마.”

 

... 그런데 뭐가 그렇게 아쉬우셨어요?”

 

마리가 웃는 모습을 더 보고 싶었는데, 항상 눈물이 터진다니까.”

 

오늘도 딜라이트로 따님을 보고 오신 거예요?”

 

.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그때였나 봐. 마리의 10번째 생일파티를 하던 날. 벌써 15년 전의 일인데... 마리가 살아있었으면 아벨 네 또래 정도 됐을 거야.”

 

 

 

덱스터는 아벨을 보며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딜라이트를 찾게 만드는 그의 갈증은 그리움이었나보다. 아벨은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루고에 가서 딜라이트를 드셔보세요. 거긴 최소가 1시간짜리래요. 다들 대단하죠? 제가 그 정도 만들 능력이 있었으면, 카페는 때려 치고 바로 마법사가 된다고 했을 거예요.”

 

아벨 너라면 지금이라도 마법사에 도전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벨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시간이 짧다고 투정 부리긴 했지만, 대신에 아벨의 딜라이트만큼 효과가 확실하고, 맛까지 보증하는 건 없을 거야. 굳이 먼 루고까지 가서 맛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그가 예의상 해주는 말이라고 여겼지만, 그래도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아벨은 웃음을 띤 채 말을 이었다.

 

 

 

루고가 멀긴 하죠. 하늘 마차를 타고 가도, 여기 라플란드에서 루고까지 가는 데 삼사십 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말을 꺼내고 보니 그곳이 정말 멀게만 느껴졌다. 하늘 마차는 순간이동 마차라고도 불렸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웬만한 거리는 순간적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심지어 하늘 마차는 푯값도 매우 비싸서 아무나 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걸 타고도 루고까지 가는 데 삼사십 분이 걸린다면, 다른 일반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소요 시간이 며칠로 늘어날 게 뻔했다.

 

 

 

루고는 아카이아의 수도이자 마법사들의 도시였다. 위대한 마법사가 되어 자신도 언젠간 당당히 입성할 줄 알았던 꿈의 도시. 하지만 지금의 아벨에게 루고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머나먼 도시로만 느껴졌다.

 

 

 

조금 전에 들었던 칭찬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잠시였다. 자신의 처지가 떠오르자 아벨은 칭찬에 더는 의미를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니까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아벨이 만들어 주는 거 마시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덱스터 아저씨뿐일걸요. 요즘 딜라이트 때문에 진상 손님이 늘었어요.”

 

진상 손님?”

 

. 다른 지역의 딜라이트 시간과 비교하면서, 얼마나 뭐라고 해대는지... 제가 일부러 메뉴판에 지속시간까지 명시해 놓고, 처음 드시는 분께는 설명까지 해드리거든요. 그런데 괜찮다고 하고선 꼭 다 마시고 나면 뭐라고 하시는데...”

 

 

 

딸랑.

 

 

 

아벨의 말이 채 이어지지 못하고 카페 문이 열렸다.

 

 

 

, 어서 오세요.”

 

 

 

들어오자마자 카페 안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훑어본 남자가 카운터로 다가오며 대뜸 물었다.

 

 

 

여기 딜라이트 팔지?”

 

.”

 

한 잔만 줘.”

 

혹시 저희 카페 처음이시면, 메뉴판에 적혀있는...”

 

, 귀찮으니까 그냥 줘.”

 

 

 

남자가 얼굴을 팍 구기며 까칠하게 대꾸했다. 그럼에도 아벨은 뒤탈이 없게끔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럼 제가 간단하게 설명이라도,”

 

괜찮다니까. 빨리 주기나 해.”

 

 

 

남자는 카운터에 화폐를 대충 던져 놓고 홱 돌아섰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뚝뚝 끊어내며, 반말로 화답하는 손님 때문에 아벨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아이디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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